본관은 전주, 세종대왕의 5자 광평대군 의 후손으로 임정부정공파로 광평대군 15세손 택연의 3자 가운데 장남이다. 서산군 대호지면 사성리 510번지에 태어나 유학을 익혀 1894년 내부 과시에 합격하고 1897 ~ 1912년까지 자인 현감을 역임한 후 귀향했다. 1914년 3월 1일 일제의 부군통폐합으로 55세에 초대 대호지면장이 맡겨졌다. 이후 정미면 산성리 98번지로 이거했다.
그는 4월 4일 대호지면 면사무소 앞에 집합한 면민 4 ~ 500명에게 도로 수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모이게 한 것이다. 각자 찬성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시장으로 향해 가자고 연설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이어 면 소사 송재만이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 앞세우고 애국가를 배포했다. 그의 지휘하에 군중들은 오전 11시경 천의시장에 도착하여 시장 일대와 천의경찰관주재소, 정미면사무소 등을 활보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주재소 일경들은 1,000명이 이르는 만세 군중들의 위세에 눌려 진압 해산시키지 못하고 관망만 했다.
오후 3시경 이후 만세 군중들은 귀가하려고 염건피장 부근, 천의리와 승산리 경계 일대 등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시장에서 30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군중들과 휴식하며 귀가를 준비했다. 그런데 오후 4시경 당진에서 출동한 일경 2명과 주재소 순사, 순사보가 태극기를 탈취하려고 시도함으로 군중들은 저항하며 돌을 던지고 일경들을 구타했다.
그러자 일경들은 주재소로 도주했고, 군중들은 주재소를 공격 파괴했다. 위협을 느낀 일경들이 주재소를 버리고 구시장 쪽으로 탈주하자, 군중들은 이들을 추적하여 붙잡아 구타하는 등 부상을 입혔다. 군중들을 제지하려고 달려든 일본인도 응징했다.
오후 5시경 송재만, 한운석 등이 일본인 집을 습격해 엽총, 권총, 탄환 등을 획득했다. 그는 귀갓길에 장전리에서 송재만 등이 획득한 총기, 탄환, 일경의 칼을 송재만에게 숨길 것을 명령했다. 이에 송재만은 면의 북쪽 끝자락 적서리의 덤불 숲속에 숨겼다.
그는 4월 23일 구류되어 5월 13일 기소되었다. 9월 8일 예심이 종결되어 공주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고 9월 10일 송치되었다.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여 12월 24일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으나 불복하고 고등법원에 상고를 제기했으나 1920년 2월 7일 상고 기각으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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