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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국어 자료실)

윤동주의 작품

by kjk쌤 202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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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윤동주

영화감독 이준익 은 일찍이 왕의 남자, 소원, 사도 등으로 이름을 알린 지 오래다. 그의 영화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며, 보는 관객의 마음에 뜨거운 응어리를 지게 하여 그것이 언젠가는 꼭 터지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동주 는 그런 이준익 감독의 또 다른 작품으로, 대부분이 알다시피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 초반부의 윤동주와 송몽규는 글 쓰는 것에 줄곧 흥미를 느껴왔고, 글쓰기에 뛰어난 실력을 보이던 송몽규는 단번에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윤동주와 확실히성향이 다르던 송몽규는 훨씬 세상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이었고, 평등을 지향했으며, 평등을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세상이라면 얼마든지 부딪히고자 하는 단단한 이념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이념과 함께 중국으로 홀연히 떠났다.

그러나 그는 다시 윤동주에게로 돌아왔다. 중국의 공산당원들이 저지르는 자신의 고향 명동촌에서의 행패를 보고 중국으로 떠난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느낀 그는 다시 귀국을 택했다. 그러한 송몽규에게 윤동주는 경성으로 함께 떠나기를 제안하고, 송몽규와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즉 지금의 연세대학교로 함께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여진은 윤동주의 롤모델과도 같은 정지용 선생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녀를 통해 만난 정지용에게, 윤동주는 일본으로 건너가라는 정지용 선생의 제안을 받게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영화 속 정지용 선생이 윤동주에게 건넨 말이다.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윤동주에게, 그는 이 말을 하며 윤동주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를 단지 저항시인

윤동주는 자신의 감정을 문학 속에 모두 녹여내고자 했던 순수시인 중 한 명이었으며,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저항시인이기 전에, 결국 문학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영화 동주는 윤동주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라는 프레임에만 가두어 바라봤던 사람들의 시각에 대해 반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를 저항시인으로 보는 이유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시를 썼으며, 일본 유학 중 일본 경찰에게 잡혀 체포를 비롯한 고문과 실험을 당했을지라도 감옥 안에서 나라의 패망에 대해 아파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지용은 윤동주에 대해 그는 의지가 약했다.

그러기에 서정시에 강했다.’ 라고 말한다. 윤동주는 유학 내내 송몽규의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의 활동을 통해 일제에게 강하게 저항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는 틀에 가두어 판단하는 것은 일제의 직접적 탄압을 받기 이전부터 그가 문학에 대해 가지던 애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저항시인이라고 규정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서정시인으로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윤동주의 죽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윤동주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차가운 감옥에서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의 시와 그의 일대기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 또 다른 의미로 별이 되었다. 남겨진 그의 시들이 우리를 위로하고, 스스로에 대한 참회가 담긴 시들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그를 존경하는 문인들과 학생들이 그의 문학관을 향해 발걸음을 한다. 그를 존경하는 음악인들이 그와 그의 시를 주제로 한 음악을 만든다. 그는 우리의 별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훤히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 속에 윤동주가 아직 존재하는 것만 같다.

각자가 가진 신념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던 그들이 있었기에, 그 당시 우리를 가로막던 일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국가의 재건과 각자 국민의 꿈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시절의 고통에 대해 마치 직접 겪었던 것처럼 가슴 아파하게 된다. 하루하루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독립을 위해 피로 노래하는 그들을, 우리는 비록 직접 보지 못했지만 느낀다. 느끼며 알 수 있었다.

참고자료: 국회도서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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