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시(국어 세특)

언론과 매체

kjk쌤 2024. 10. 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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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감시와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나아가, 사람은 의도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실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감시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는 현대에 이런 역할을 언론이 함으로써 사회적인 통합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에는 현대 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매체에 무엇이 있을지 조사하던 중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조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조보란 조정의 소식 혹은 조정에서 내는 신문이라는 뜻으로 관보의 일종이다. 지금처럼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도 무엇보다 꼭 알려야 할 사항들을 날마다 기록해서 배포한 문서였다는 점에서 나는 조보라는 매체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를 하고 싶었다. 더불어, 나는 현대의 언론과 조선시대의 조보를 비교해보며 두 언론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특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언론이 어떤 양상으로 발전해왔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더불어, 나는 조보의 기원과 제작과정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조보가 단지 종이 뭉치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담긴 결정체이며, 배달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또한, 나는 조보 발행주체의 계층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당대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왜 조보가 폐지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다. 현대사회에서 신문으로 일컫는 미디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따른다. 첫째는 시사성이다. 신문은 새로운 소식, 뉴스, 정보를 게재해야 한다. 둘째는 공공성이다.

 

신문은 대중들을 위한 공공의 일을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일반 독자들에게 보도해야 한다. 셋째는 주기성이다. 신문은 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발행해야 한다. 선조 때에 간행되었던 <민간 조보>는 현재 세계 최초 신문으로 알려진 독일의 <렐라치온>보다 약 30년 앞서 발간된 최초의 신문이라 할 수 있다. <민간 조보>는 민간인들이 정기적으로 를 목판 인쇄기로 찍어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유료로 판매한 매체였다.

 

오늘날 신문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미디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민간 조보>에서는 천재지변에서부터 임금의 전교 내용, 조정의 주요 인사이동, 정책의 시행과 정지 등 기사의 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일관성을 갖춘 일련번호를 매기고 매일 발행하는 날짜를 표기하는 등 형식상으로도 완벽하게 정기간행물 형태를 띠고 있었다. 현대의 신문과 견주면 유료구독이 아닌 무료구독이며, 독자가 특수층에 한정되어 있었고, 활자로 인쇄한 신문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나 <민간 조보>는 인쇄기로 찍어냈다든지, 다양성을 갖춘 뉴스와 정보로 지면을 채웠다든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펴냈다는 점 등 현대의 신문과 그 성격을 같이 한다. 조보의 기원을 가늠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는 공식적인 국가 수송 체계를 통해서이다. 조선은 국가 명령 전달 체계인 역 제도를 운영했다. 역은 국가 명령의 전달, 관물의 수송, 사신 왕래에 따른 접대, 그리고 지방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규찰 등을 담당한 명령 전달 체제였다. 역의 주요 임무인 공문서의 전달은 곧 왕의 동정과 조정의 행정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접대 등도 담당했다. 조보 역시 이 경로를 통해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조보 발행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최초의 조보 관련 언급은 1418년 분발이라는 기사이다. 1520년에는 의정부의 사록을 승정원에 출입시켜 조보의 내용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승정원에서 처결한 사항을 곧바로 알 수 없어 국정을 파악할 수 없고, 그로 인해 군주의 물음에 답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때 남곤이 조보의 선례로 제시한 것은 고려의 제도였다. 고려에서 급사중이 중추원에 출입시키면서 왕명 출납 등의 중요 사항을 확인하였던 것과 같이 운용하고자 한 것이다.

 

즉 ‘옛날에는’, ‘조보의 내용’ 이라는 표현 등을 통해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조보가 간행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의 조보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발행되었다. 먼저 승정원에서 국가 통치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안들을 선택하여 필사하는 곳으로 내려 보낸다. 주서는 발표된 내용을 받아 필사하여 발표하였다. 발표된 소식은 각 관청이나 대신들이 보낸 서리들이 조보소로 와서 필사해 갔다. 서리들의 필사가 끝나면 그것으로 그날의 신문 발행은 끝나는 것이다. 승정원이 기사의 내용을 선별해서 결정하는 신문사 편집국의 역할을 했다면, 조보의 실제적인 제작은 기별청에서 했다.

 

서리에 의해 필사된 조보는 기별군사에 의해 배포되었다. 기별군사는 현대에 보급소에서 신문을 직접 수령하여 배달하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했다고 보면 된다. 조보 발행자들의 계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기인’ 에 주목할 필요가 잇다. 대부분의 언론사학자들과 왕조실록 번역자들은 ‘기인등’ 이라는 단어를 ‘조보를 인행했던 사람들’로 해석했다. ‘기인’은 고려시대 초반 이래 지방향리의 자제를 뽑아 중앙관아에 복속시켜 해당지방행정의 자문에 응하게 함으로써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인질로서의 ‘기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앙통치권이 약했던 고려시대까지 기인들은 지방 세력인 향리의 자제로서 충당되었기 때문에 양민식자층이었으나, 여말선초의 전환기에 이르러 원래의 임무를 떠나 궁실축조 등 잡역에 종사하게 되었고 중앙통치력이 강화되던 태종 때 특히 소목법의 개정 이후 주로 소목역에 종사하는 잡역부가 되었다. 기인들은 연산군 때에 이르면 공역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재력이 고갈되었으며 심지어 유랑자로 전락하는 등 그 폐단이 극심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이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하더라도 궁방과 관청에 땔감을 공급하는 전문상인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 비해 조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조보는 현대적인 신문의 조건인 날짜기록, 정기적인 정보전달, 날씨부터 다양한 기사들을 기록한 것 등 현대 신문의 조건을 두루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조보에 대한 조사를 하기 전, 나는 조보가 단순히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차적인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를 한 뒤 살펴보니 조보는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배층,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일반 백성들과 귀양을 간 사람에게까지도 나라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현대의 스마트폰과 같은 필수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이 필수적인 존재는 선조 때 시행된 조보의 발행금지 시행 때문에 민간인들 사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선조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까웠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조보를 발행하면 왕권이 약화될까 두려울 선조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만약 조보가 더 발전했더라면, 그 발전이 지금까지 영향을 받아 현대의 미디어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아침에 받아보는 신문은 그저 종이 뭉치가 아니다. 수많은 기자들의 노력과 수고가 담긴 결과물이며, 배달하는 사람들의 땀이 담겨있다.

 

따라서 기사 그 자체에서 작성자의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보 역시 그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언론의 구조 속에서의 신문의 위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보사회의 발달 속에서 신문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데, 나는 이 이유가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상대적인 위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에 기반하여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뉴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정보수요자들이 과거와는 달리 신문, 방송에 의존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졌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신문보다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쉽게 획득할 수 있게 되면서 신문이 정보전달매체로서 갖는 의미와 비중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나는 신문이 몇 년 내에 몰락해 버릴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지나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매체들 중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고급 정리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신문의 역할을 아직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를 쓰며 나는 현대의 언론과 조보의 공통적인 특성과 차이에 대해 탐구하고, 신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담겼는지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나는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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