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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독서활동 자료실)

역사저널 그날 (2) (문종에서 연산군까지)

by kjk쌤 202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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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은 조선왕조가 시작된 후 사실상 적장자가 국왕이 된 첫 번째 사례였다. 문종의 형 이방우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적장자이기 때문이다. 태종이 왕 위에 오르기 전 잠시 형 정종을 왕위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정상적인 상속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종은 제위기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별다른 업적이 없고 그냥 단종의 아버지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세종대왕 말기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것과 이 모든 것들이 세종의 업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문종은 독창적인 화약 무기와 화차를 제작하여 여진족을 격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임지왜란 때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종이 단명하면서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문종의 동생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쫒아내고 왕위를 차지하고 단종 복위를 위해 노력한 사생신과 생육신을 죽이고 핍박한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쫒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계유정난이 혼란한 정국을 편안히 했다는 뜻의 계유정란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편안하게 했다는 뜻의 계유정난으로 표현하며 정당화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조(수양대군)의 모든 업적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쿠테타로 모두 가려졌으나 세조의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패제도를 강화하고 조선의 통치 규범을 정리한 경국대전은 세조의 업적 중 하나이다 하지만 세조와 그의 세력들은 그 당시에는 승리자였으나 결국 역사 속에서는 세조와 그의 세력에 맞선 반대 세력이 충신이 되었다.

 

조선왕조 역사상 최고의 폭군 연산군 성종의 아들로 어머니 폐비 윤씨의 억울한 죽음이 폭군 연산군을 만들었다고 생각할수 있으나 어쩌면 연산군은 자존감이 낮고 피해의식이 강하며 애정결핍까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고 폐비 윤씨에 대한 복수를 핑계로 폭군인 자신을 비호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휘두를 줄만 알았지 다스릴 줄 몰랐던 연산군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함부로 휘두르면 결국 자신이 다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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