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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영어 자료실)

한국 영어교육의 역사

by kjk쌤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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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회에서 영어교육이 열풍이 불고 있다. 10개가 넘는 교과목에서 3대 과목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어는 학교 내에서 대학에 가기 위한 필수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하여 영어학원이나 과외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다는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며, 전체 사교육비의 약 30%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영어 사교육은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거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문득 언제부터 영어가 이렇게 중요시됐으며 현대식 영어 교육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언제일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조선시대 중인 계급인 역관이 해당기관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이때가 시초였을 거라 생각하며 역관의 영어교육과 관련 기관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려 하였지만 이 시대에 교류했던 대상에 영어 사용 국가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었다.

 

1) 한국 영어교육의 도입과 발전 과정

한국에서 외국과 교류한 역사는 매우 길지만 이에 비하면 본격적인 영어 교육이 시작된 것은 비교적 짧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에 청나라 통역관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이때까지 조선에 영어를 능통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고종 구한말부터이다. 고종은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으며 영어의 필요성을 실감했고 미국의 문물을 접하고 미국의 부강함을 느꼈다. 이에 따라 선교사를 채용하여 역관 양성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영어 교육이 시작되어 점차 확대되었다.

 

조선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점차 생겨났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대표적인 기관으로서, 육영공원은 미국 사절단인 보병사 일원의 건의로 18869월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근대학교로 양반고관 자제들을 수용해 근대교육을 실시하여 인재를 키웠다.

 

과목은 영어를 비롯하여 독서, 습자, 산학, 지리 등의 과목이 있었으나 1894년 정부의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려워져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육영공원은 정부고관자제만을 수용했다는 신분적 제한과 민족사회에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였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배재학당은 1885년 서양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근대 사립학교이다. 배재학당의 목적은 기독교인 양성과 근대 국가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있었고, 영어,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의 학과목 뿐 아니라 성경과 체육도 수업에 포함되었다. 수업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지만 수업료는 매월 3량이었고, 학비가 없는 학생은 일자리를 주어 스스로 돈을 마련할 수 있게 하였다.

 

2) 한국 영어교육의 특징

사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구한말 당시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웠던 사람들은 6개월에서 10개월 정도면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영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교육기관이었던 육영공원의 입학생 선발 기준은 과거에 급제한 초급 관리나 아직 과거에 오르지 못한 선비 혹은 고위관리의 추천을 받은 양반의 자제들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독해와 문법 중심의 영어교육과는 다르게 조선시대 구한말의 영어교육은 회화와 발음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당시 영어교재인 아학편 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학편은 다산 정약용이 편찬한 한자 교재인데 이를 지석영이 1908년에 영어와 중국어, 일어 발음을 합쳐 편집하여 재출판한 책이다. 그 내용을 살펴봤을 때,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rf, v발음을 현재와는 다른 표기법을 활용해 더 정확히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한국 영어 능력자

이렇듯 체계화된 영어 교육을 통해 많은 영어 구사자가 등장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을 소개한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의 개혁, 민권운동가이자 외교관, 언론인, 교육자였으며 조선인 최초의 영어 통역관이었다.

 

가 영어를 배운 배경과 그 실력에 더 주목하여 살펴보겠다. 그는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네덜란드 영사관의 서기에게서 영어를 배웠고. 1883년 한미수호조약 체결 시기 미국공사의 통역관으로 귀국하였고, 이후 틈틈이 영어 실력을 키워나갔는데 그 실력이 한글에 없던 단어까지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라 하였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도 역대 대통령 중 영어를 가장 잘 하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1895년에 배재학당에 입학했고, 입학 6개월만에 신입생에게 초보영어를 가르치는 조교의 직책을 맡을 정도의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600여명의 저명인사가 참석한 졸업식에서 영어로 한국의 독립 이라는 주제로 졸업사를 했다는 기록에서도 그의 영어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겠다.

 

참고자료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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