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곳에서, 나와 나 주변의 세상만을 보고 느껴왔던 나는, 그 범위를 벗어난 더 넓은 세계를, 말이나 글만으로 접해왔다. 그리고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표면을 진실로 믿어왔다.
달콤하게 덧발라진 거짓 아래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사실로 도금되어 있는 더 깊은 진실의 덩어리는 무엇이었는지, 알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미 살고 있는 세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조금이라도 나와 먼 곳이라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아는, 세계가 근절해야 할 문제점 중 하나. 굶주리는 것. 지식적인 면으로는 이렇듯 극히 제한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평소 풍부하다던 감성은, 불쌍하다고 안타깝다고 눈물을 흘리는 데 쓰일 뿐 이를 해결할 만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애초부터 나와 먼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니,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적었다. 무엇보다도, 아직 어리고 작고 앞으로 달릴 줄밖에 모르는 내가, 이런 국제적인 이슈를, 이토록 슬프고 어려운 문제를 풀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따금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면서, 신문 기사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마음 아파하고서,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돌아갈 따름이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대답하기 힘든 의문 중 하나였다. 어릴 적에는 그냥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줄 알았다.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들은 밥을 못 먹는데 너는 그렇게 남겨서 되겠니? 라고 나무라곤 하셨으니까. 그래서 밥을 안 남기려고 하거나, 밥을 처음부터 적게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 게 아니란 걸 알고 나서부터는 기아의 원인을 가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그래서 밥을 살 돈이 없는 거라고. 그러면서 가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그럼 돈을 벌면 되지, 하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노력해서 한의 기적을 일궈냈다는데, 아프리카라고 그렇게 못 하겠으며, 외딴 섬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기억이다. 사실, 지금도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창피하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란 것을, 이제 와서야 알게 된 나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들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바로 국제적인 도움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이 문제가, 사실은 수많은 국가들과 작고 큰 사회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럽연합만 해도 그랬다. 과잉 생산된 식량을, 자국의 농민들을 위해 폐기처분하는 모습들. 어쩔 수 없는 정책이라 하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들 개인만을 외치고 자신만의 세상과 사회, 국가를 외치게 된 걸까. 언제부터 모두가 이렇게 침묵하게 된 걸까. 지금껏 나만 알고 살아온 나 자신도, 언젠가 커서 나만의 작은 사회나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면, 이런 세상을 바라게 될까.
뒤늦게 기아에 관심을 갖게 되어 후회스러운 마음은, 이를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FAO 한국협회 홈페이지와 FAO 자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아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추가로 살펴보고, 최근 보고서를 찾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에서 본 기아 문제의 현황을 논의했다. 기껏해야 그 정도였지만 기아 문제에 대해 한 층 생각이 발전된 기분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기아의 이면,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갔다.
사실 내가 이 문제를 이렇게 늦게 이해하게 된 것은, 학교 교육의 문제도 크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듯, 학교에서는 기아에 관해 교육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를 구체적으로 배워 볼 기회가 없었다.
나 같은 학생들이 더 생겨나지 않도록 하려면,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학교에서 이 문제에 관한 배움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을 알리고, 또 몸소 느껴보기 위한 체험적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기아 문제가 심각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개혁에 있어서 국제적인 협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나와 같은 개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가난한 국가들이 정치적인 부패에서 벗어나서, 보다 쉽게 기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경제적인 원조도 중요하지만, 탄압적인 국가 정치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천천하게나마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국가들이 몇몇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는 금전적인 투자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경제적 손실이 줄고 국제적 사회의 공동 발전을 통해 전체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게 있어서 기아 문제는, 선뜻 다가가기 두렵고 어려운 이슈다. 이제야 실정을 조금 알게 된 내가, 감히 도움이 될 수 있는 걸까, 라는 고민에 휩싸이고는 한다. 구호도 무색해지고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낳으며 수많은 딜레마가 기아의 굴레에 빠져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같이 이기적인 아이가 침묵하는 이 사회에서, 어떤 힘을 쓸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이제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내던지려 한다. 작은 관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관심으로 비롯한 커다란 노력으로, 언젠가는 분명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 거다. 나는 이제부터 그 커다란 노력에 또 하나의 두터운 힘을 얹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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