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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독서활동 자료실)

이희영의 소설 (페인트)를 읽고

by kjk쌤 202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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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독서 감상문을 시작할 때면 나는 항상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부터 적는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들은 동기는 짧게 줄이라고 하지만, 내게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내가 그 책을 읽고 느낀 점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항상 내가 그 책을 읽게 된 구체적인 과정을 하나 하나 떠올리는데, 그 과정을 정리해보면 그 모든 게 마치 운명 같아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정말 간단했다. 중학생 소설 추천을 검색했고, 페인트가 떴고, 도서관을 구경했고, 페인트를 발견했고. 어쩌면 그렇게 간단한 과정으로 이렇게 훌륭한 책을 읽게 된 것이 내게 엄청난 행운일지도 모른다.

 

미래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실시했는데, 일단 아이를 낳고 버리면 그 아이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양육 공동 시설인 NC 센터에서 키워지게 된다. 이 아이들은 19살까지 여기서 살 수 있으며 그 이후로는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서 센터를 나가려고 한다.

 

센터를 나가려면 13살 이의 아이들이 직접 부모 면접을 봐야하는데, 이것이 Parents Interview이고 여기서 PaInt 를 따서 Paint라는 은어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정부가 입양을 함으로써 주는 혜택을 받기 위해 가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제누 301은 이를 싫어한다.

 

그러던 중 부모가 되기에는 어설프고 부족해보이지만, 가식도 없고 솔직함이 느껴지는 하나와 해오름을 보게 되고, 그는 1, 2, 3차 면접까지 진행시킨다. 3차를 통과하면 합숙을 하고, 합숙 기간까지 마치면 입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누는 3차 면접에서 이 둘을 탈락시키는데, 그 이유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다.센터장 박이 입양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제누가 한 말이다. 이렇듯 제누는 자신이 좋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 둘을 탈락시켰던 것이다.

 

대부분의 중학생 추천 도서가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제누 301NC 센터에서 살아가면서 센터장 박과 가디언 최, 방을 같이 쓰는 동생 아키, 그리고 하나와 해오름과 만나면서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이 소설은 얼핏 보면 부모에 관한 소설 같지만, 마지막 부분을 봤을 때, 이 소설은 자식의 자격과 자질에 대해서도 따지고 있다. 제누 301 역시 부모란 무엇인가 보다는, 부모에게 맞는 자식 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나가고 있었다. 그럼 결국 이 소설의 주제는 부모와 자식, 둘 다의 자격과 자질, 그리고 공존 아닐까?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날마다 심각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히려 아기를 낳은 뒤 그것을 버리면 정부가 키운다는 설정이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아기를 낳은 부모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다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충격적인 일을 저지른 정부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사실 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다.

 

또 이 입양 제도에는 줄거리에도 소개했듯 여러 규칙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페인트인 것 같다. 만약 그 제도가 부모가 아이를 면접한다였으면, 나는 비인간적인 제도에 대해 화를 낼 것이었다. 그럴 거면, 입양할 아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딱 원하는 그런 완벽한 아이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고, 그러면 이 아이가 왜 버려졌겠냐고.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것을 고르는 상품이냐고. 그러나 아이가 부모를 면접한다 라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순간 정지해버렸다. 사실 첫인상은 거만하다였다. 면접은 곧 평가니까, 아이가 어른, 그것도 부모를 대놓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페인트 제도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 생각이 조금은 잘못됐나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 페인트 제도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페인트를 해야 아이가 훌륭한 부모를 선택하고,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지 않고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까 부모가 아이를 면접한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완벽한 아이가 없듯이, 이 세상에 완벽한, 딱 내가 원하는 그런 부모가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글쓴이는 이 소설에 페인트 제도를 도입시켰을까? 물론 완벽한 부모는 없겠지만, 자식과 부모가 서로 맞추어가며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단순히 아이가 부모를 평가하지 말고, 제누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도 뒤돌아보면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가정을 꾸미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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