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의 공감대
대한민국 고대사 학계 초창기부터 식민사관의 영향을 보여주는데 한반도에 세워졌던 고대 국가들은 전통도 없고 허약한 나라였다고 주장하며 원로 학자들은 별 근거도 없이 그대로 반영하여 주장한다. 심지어 이 내용은 1956년 발행되었던 중등 국사에도 나오는 내용이라고 한다.
결국 일본의 이러한 식민사관은 자연스럽게 원로학자들의 주장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역사 공동 연구 보고서에서는 일본과 역사 인식의 공감대를 만들어 보고자 마련했던 사업이었지만 결국 식민사학자들이 원했던 그림을 한국 학자의 손으로 써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먼저, 고구려의 국가 발전에 대한 주석에는 중앙집권적인 고대 국가 체제가 성립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체제인 부 체제 라고 표현하며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백제도 마찬가지로 초기 고대 국가라고 표현하며 ‘부 체제를 시행하는 국가 체제’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신라 또한 단위 정치체인 6부를 왕권에 종속적으로 연합하여 초기 고대 국가를 형성하였다 고 표현하였다. 이렇듯 한일 역사 공동 연구 보고서나 거기에 인용된 책에 반론이 있다는 사실을 보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학자가 이 연구에 참여했다는 것은 일본 쪽에서는 한국 학계의 대표적 주장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신라와 일본의 외교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옮겨 놓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도 근거 같지 않은 근거만 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자들의 이론과 체제 를 보여준다. 결국 그들은 한반도에 고대 국가가 세워졌던 시기를 늦추고, 이를 위해 사건이 일어난 시점까지 멋대로 뒤로 밀어 놓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고대 일분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에 있던 나라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의 한 근거라고도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근거로 일본은 신라가 일본에게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신라의 저자세 외교와 식민사학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고대 한일 관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부 일본 학자들과 한국 학자들은 일본이 신라보다 우월한 지위였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삼국 통일 을 전후한 시기에도 일본이 신라보다 우월한 지위였다고 여기며 심지어 우리나라역사학자들은 신라가 일본에게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학자도 우리나라의 고유성, 위대함을 무시하는데 일본역사학자들은 얼마나 무시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역사학자라는 직업은 기록이 항상 진실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뒤에 숨겨진 사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인데 기록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만 하는 것은, 일본서기 같은 일본계 기본 사료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무시하며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것은 학자라는 직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사회에 식민사학의 논리가 활개 치는 이유는 그런 논리를 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식민사학을 심는 자들을 제거하지 못하고 식민사학을 심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자리잡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자, 식민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원로들이 기른 일류 대학 출신들로 이루어진 집단인 것이다. 식민사학의 요소가 뿌리를 내리는 데 또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요소는 학회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국회도서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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