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매달 이 달의 독립운동가 를 선정하여 여러 독립 운동가를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내가 아는 독립 운동가는 매우 소수였다. 독립 운동가들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삶을 쏟아 부었는데 기억되고, 우리가 배우는 독립 운동가들은 매우 소수라는 사실에 죄책감, 부끄러움, 죄송함을 느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 훌륭한 독립 운동가에 대해 힘써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조선의 딸, 총을 들다 라는 책을 구입해 읽었다. 그 책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훌륭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 다룬 책이었다. 그 중 국내 유일, 국내 최초 여성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윤희순 독립 운동가가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여성이라고 한계 짓지 않고,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이 의병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말리거나 가슴을 졸이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윤희순 독립 운동가에 대해 몰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울컥했다.
윤희순은 강직한 국가관을 가졌던 시댁의 영향을 받았다. 을미의병에서는 의병활동 뒷바라지, 일본저항의 의도로 의병가사를 제작하고 대중에게 배포하였다. 고종 퇴위와 군대해 등으로 국권상실의 위기가 고조되자 다시 전개된 전국적인 의병항쟁에서 윤희순은 안사람의병단 을 조직하였다. 또한 남만주 환인현 지역에 교육기관 노학당 을 건립하였다. 그 이후 만주와 연해주, 간도지역 일대에 흩어진 의병운동의 주역, 후손들과 문인들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단’을 조직하였다.
2.본론
1) 국내에서 펼친 독립운동: 을미의병 시기 윤희순의 활동
을미의병시기의 윤희순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의병가사의 제작 및 의병활동의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윤희순의 의병활동은 조선 선비의 아내 이름으로 왜놈대장 보거라 라는 격문을 지어 일본 대장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조선의 안사람으로서 일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그 당시로 보았을 때는 이례적이기는 하였으나, 그만큼 자신의 조국관이 투철했으며 안사람으로서의 당당한 표현이었다.
둘째, 의병가사를 배포하면서 의병활동의 당위성과 국가의식을 고취시켰다. 윤희순의 의병가사는 일시적인 가사의 형태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명확한 국가의식을 고취시켜 민중들에게 투철한 국가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의병가 왜놈대장보거라 방어장 등의 의병가사를 통해서 자신의 명확한 국가의지를 피력함은 물론, 당면한 국가의 현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어떻게 나아가야하는가를 제시하였다.
셋째, 안사람의 국가의식의 변화를 주도했고, 의병활동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과거의 집안에서 살림만을 도모하는 안사람이 아닌 국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안사람으로 거듭나도록 안사람들의 국가의식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의병활동 뒷바라지와 의병가사 전달 등 의병활동에 참여하면서 올바른 의식형성을 도모했다.
2) 국내에서 펼친 독립운동
윤희순의 정미의병 시기의 의병활동은 세 가지로 나누어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윤희순은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의병가사에 반영하였고 일본침략의 부당성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을미의병 시기의 의병가사 제작했던 시대적 배경보다 더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가의 현실을 의병가사를 통해서 정확하게 반영하였고 민족의 자주적 의지를 담아 일본침략에 대한 부당성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강력한 저항의지는 오랑캐들아 경고한다 왜놈 앞잡이들아 안사람의병가 금수들아 받아보거라 등에 잘 드러나 있다.
둘째, 의병활동에 있어서 안사람의병단 의 적극적인 의병활동을 도모하였다. 을미의병 시기에 안사람들의 의식개혁에 영향을 주고 국가상황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면, 정미의병 시기의 안사람들은 직접 군자금을 모으고 병기를 제작․화약을 제조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며 군수품을 전달하거나 훈련장에서 훈련에 직접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남장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거나 군자금 모금과 군사훈련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했던 점은 이미 확고한 사상을 바탕으로 행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안사람의병단’은 적극적인 활동을 윤희순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윤희순이 제작한 의병가사와 의병활동에서 이미 남녀구분 의식을 타파하고 국가관의 본원적인 의미를 고조시켰다는 점이다. 위의 의병가사「안사람의병가」에서도 나타나듯이 윤희순은 의병가사와 안사람의병단의 활동을 통해서 여성들의 구국의지와 저항의식을 부각시켰는데 그는 이미 유교사회에서 안사람의 의미를 뛰어넘어 여성해방과 지위향상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조국의 의미와 조국 속에서 국민의 일원인 여성으로서 민족적 사명의식을 도출시켰다. 이것은 당시 유교적 사회 분위기로 보았을 때 큰 변화였음에 틀림이 없다.
3) 국외에서 25년간 펼친 독립운동
1910년 8월 29일 의 경술국치는 의병항쟁을 하던 민중들의 희망을 상실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의병활동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현실에 부딪쳤다. 우선, 국내에서 국권회복의 꿈이 상실되자 만주 또는 시베리아로 이동하여 앞날에 전개해야 할 숙명적인 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에 시각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국내진입이 가능한 서북간도와 시베리아 지방에 민족정신이 투철한 한민족의 집단적 거주지역을 여러 곳에 만들어, 항일운동의 세력 근거지로 삼고 그곳을 중심으로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윤희순 가족과 의병가족들도 그런 취지로 서북간도로 이주하여 해외항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윤희순의 국외활동은 몇 차례의 이주지역이 있었고 애국계몽운동과 끊임없는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활동한 대표지역이 흥경현, 환인현, 무순의 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순지역은 일본의 대토벌 작전 속에서 조선독립단, 가족부대를 만들어 강력한 저항을 하면서 한중연합을 주장하는 등 지도자적 면모를 보인 곳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4)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기억하는 우리의 자세
윤희순은 국내에서는 의병투쟁을, 만주로 망명해서는 독립군과 함께 30여 년 간 항일투쟁을 벌였다. 여성의병대를 조직하고 탄약 제조소를 운영하는 등 적극적 의병투쟁을 했을 뿐 아니라 8편의 의병가 와 4편의 경고문 을 지어 선무활동에도 앞장섰다. 특히 여성들이 항일투쟁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등 여성 계몽운동에도 큰 역할을 했다.
아직 많은 친일파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있는데 말이다. 국내 최초, 국내 유일 여성 의병장에 대한 대우가 너무 약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국립묘지의 뜻을 정확히 하여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독립 운동가들을 국립묘지에 모셔야 한다.
3. 결론
조국독립을 향한 자주적․주체적인 민족의지로 자주독립운동을 실천하였다. 이는 오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보다 삶에 끌려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윤희순의 일관된 구국운동의 실천은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윤희순은 가족을 희생하고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식의 죽음대하며 고향을 등진 상황에서도 오직 조국독립을 위한 구국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생 중 40년을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윤희순에게 조국의 의미는 자신의 일생 이상의 의미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개인만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고, 국가와 개인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는 현대인들에게 국가 안에서 개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우치게 할 수 있다.
윤희순의 끊임없는 구국의지와 구국운동은 오늘날 사회불안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무엇이 이들을 일생을 바쳐 구국운동을 하게 만들었는가? 그들의 조국을 향한 구국활동은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물음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부각되는 사회불안과 타협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고순희, 2016, [근대의 가사들] 여성독립운동가 윤희순의
심옥주, 2010, 제5장 윤희순의 구국운동의 사상성에 관한 연구
국회도서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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