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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세계사.한국사 자료실)

조선 백자 및 백의풍습을 통해 대표되는 한국의 미

by kjk쌤 202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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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의 백자 달 항아리는 1994년에 발표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에 실린, 백자 달 항아리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담은 수필이다. 백자 항아리들이 오늘날 한국미의 가장 특색 있는 아름다움의 한 가닥을 차지하게 되었고, 조선시대를 대표하던 이러한 흰색은 우리 민족의 성정과 그들이 즐기는 색채를 잘 반영한 것이라 언급한다.

또한 그녀는 백의민족 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던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백자의 모습과 결합시켜, 그 흰빛의 조화를 우리만의 신기롭고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 칭송하는 모습을 보인다.

백자 달 항아리는 우리나라 국보 제309호로, 둥글고 유백색의 형태가 둥근 달을 연상하게 되어 달 항아리 로도 불린다. 이는 무늬, 문양 등 어느 장식이나 기교도 없이 단순한 둥근 형태에 우유 빛 백색을 특징으로 담고 있어, 조선시대가 추구했던 유교적 분위기에 맞게 검소하고 실용적인 형태를 띠는 게 그 특징이다.

실제 노화랑 대표의 노승진 씨는 백자는 단순한 고미술품 차원을 넘어 당시의 생활상을 예민하게 반영하는 동시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응축하고 있는 결정체 라며 백자가 간직한 아름다운 형태미는 시대를 초월해 현대적인 조형감각으로 국제무대에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한민족의 별칭으로 여겨지는 백의민족처럼 백색의 소박한 이미지는 검소를 숭상하는 성리학 이념에도 잘 부합할뿐더러 오랜 기간 동안 동일 왕통과 주도 이념이 계승되면서 백의풍습은 관습으로 굳어지고, 국내외의 조선복식의 특색으로 인식된다. 실제 조선시대엔 백의풍습은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풍습이라는 특징 또한 강하여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백의를 입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우리의 별칭을 백으로 사용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백자만이 남아있을 뿐 우리나라 역사서 어디에도 백의민족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이에, 백의민족 숭상파들은 이 근거를 찾기 위하여 우리나라 사서를 모조리 뒤졌으나, 백의민족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순 없었다.

그리하여 찾은 것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의 부여조인데,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라고 해석하며 이를 백의민족에 대한 근거로 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뿐, 어느 사서에서도 백의민족과 비슷한 단어나 백의에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도 조선 시대는 백색에 집착했을까.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혹은 염료를 구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이라는 견해는 제1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견해로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선비들은 성리학 중심 사회를 주장하며 청렴하고 결백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1. 한국미

한국미는 쉽게 말해 한국의 특징을 나타내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만이 지니고 있는 한국만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한국적 미,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작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라고 볼 수 있는데, 국학연구의 학풍이 고조되면서 문학, 미학, 미술사, 역사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인의 미의식 등의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이를 표현하고자 시작한다.

주로 미술, 음악, 건축, 복식 등 예술작품에 표출되고 있는 미적 특징을 통해 미의식을 구축하였다. 보통 제시되는 정형성, 대칭성, 완벽주의를 거부하고, 전통 예술에 표현된 한국적 미적 가치에 대해 미학자 고유섭 선생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무기교의 기교, 자연성, 소박미, 조형의 평면성, 담백성 등의 단순함이 제시된다.

 

2. 백자 달 항아리, 자연스러움이 가지는 미

. 백자 달 항아리에 대하여

최순우는 백자 달 항아리를 보고 넉넉한 맏며느리 같다고 한다. 또한 미술사학자 겸 고고학자였던 김원용 선생은 이론을 초월한 백의 미 라고 노래한다. 이는 모두 백자 달 항아리를 예찬하는 일컬음이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은 조선 백자의 전성기였다.

깨끗함과 담백함을 그 무기로 갖춘 백자들은 조선 백자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 아무런 무늬를 감이하지 않고 단순한 모양으로 백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기교의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은근한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백자의 미학이다. 최순우가 언급한 넉넉한 맏며느리 의 비유는 참으로 적절한 것이, 넉넉함과 여유로움, 자연스러움과 인간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이 바로 조선 백자의 특징이자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백자 달 항아리가 조선백자의 정수로 평가받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 백자 달 항아리, 그 속에서의 한국미는?

달 항아리를 눈여겨보면 몸통 한 가운데에 가장 불룩한 부분이 어긋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부분의 비뚤어짐은 어깨 부위 좌우 높이의 차이를 만든다. 이는 달덩어리처럼 완벽히 둥그런 모습보다는 약간 불균형한 모습에 가깝다. 또한 자세히 보면 반구 2개를 이어 붙인 흔적에, 정확한 원을 이루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보인다.

이는 조선 백자가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커다란 항아리의 경우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만들고, 이 둘을 이어 붙여 접합시킨다. 이 때 접합 부위를 깔끔하게 다듬지 않은 것이 백자 달 항아리의 특징이다. 완벽하고 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자연스러움을 중시했기에 달 항아리는 우리 민족만의 한국미를 지니게 된다.

현대 시조 중에는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 김상옥의 연시조 백자부는 백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양한 필치로 그려 내어 우리 민족의 심성을 표상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여기서 또한 백자에서의 한국미를 찾을 수 있다.

위 시조는 백자에 그려진 그림, 백자의 제작 과정과 한계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심성을 표현하며, 이를 예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데 우리 고유의 백자의 특징을 살려 우리 민족을 예찬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 백자를 통해 한국의 미는 여실 있게 비춰진다.

 

3. 백의풍속, 우리 민족의 미

한국인은 서민들의 일상복은 물론, 상류층이 착용하는 편복이나, 제례복, 상복 등 매우 다양하였으나, 그 의복에 있어 예로부터 백색을 숭상하고 백의를 즐겨 입는 백의호상의 전통을 이어왔다. 흰색은 빛을 가장 많이 반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밝고 가벼우며, 일반적으로 순수, 청결, 결백 등과 같이 주로 긍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백의풍습은 조선시대에 더욱 뚜렷한 경향을 띠고 있지만, 고대로부터 백의 착용의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왔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는 조선 당시 서양의 상인이나 선교사 또는 각국의 관리들의 기행문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백색은 상복이라는 이유 등으로 조선 시대 태조 7, 태종 원년, 세종 7, 연산군 11년과 12, 인조 26, 현종 11년과 12, 숙종 2년과 17, 그리고 영조 때와 같이 백의금지령은 여러 차례 내려진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백의풍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1895년 흰옷을 벗고 서양식 옷을 착용토록 하는 변복령에 항의하는 의병 운동이 일어난 것과 같이 백의를 숭상하는 한국인의 집념은 강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런 민족의 합심은 다른 방식에서의 한국미를 대표하는 것은 아닐까.

 

4. 조선시대 백색 문화의 전파 및 쇠퇴

시대상은 문화를 만들어낸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깨끗하고 청렴한 것이 그 주가 되었던 성리학 사상에 의해서든 당시 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던 조선 백자, 그리고 오래서부터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 왔던 백의, 이 둘의 결합은 조선시대 백색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백색이라 함은,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색이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힘들 순 있지만 한국만이 추구하던 아름다움, ‘한국미와 백색의 결합은 그 의미를 만들어 낸다. 화려한 장식에서 벗어나 백자만의 깨끗한 아름다움을 살리고, 백의 착용의 전통을 이어 나가려는 민족정신은 그만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한국의 미는 이를 통해 대표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시간이 지남으로써 서양 문화의 전파는 우리 전통에 발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근대화 이후, 양복이 개화의 상징이 되었으며 한복은 구시대의 상징으로 변모된다. 현대 사회 또한 정보화와 세계화에 따른 활발한 교류에 그에 따른 국제화 문화의 형성으로 우리 전통엔 많은 변화가 생겨온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 민족만의 한국미를 살린 전통을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후반부터 역사성과 지역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우리 민족은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활발히 한다. 1980년대 이후의 패션은 서양문화의 모티브 대신, 오리엔탈 문화를 그 디자인의 모티브 대상으로 삼는 특징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민속복식을 세계 패션의 주제로 부각시키고, 한국의 전통을 주제로 한 디자인들은 우리의 주체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한국적 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최근 2018, 전통 주얼리 브랜드로 잘 알려진 무궁화랑은 18 F/W 컬렉션으로 백의민족인 이름에 걸맞은 착장을 현대식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우리 고유의 미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백색 문화의 쇠퇴는 당연시 되고 있다. 백의 착용에 대한 금령이 많이 존재해 왔지만 결국 한국인의 오랜 전통과 그 미는 바뀌지 않았다. 또한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인만의 백의에는 그 특유의 한과 정서가 배어 있으며, 외세에 대한 저항을 내포했다는 것으로 민족성의 상징으로서도 작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 보존되어 오던 백색 문화의 한국미를 쉽게 저버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한국인의 백색 문화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도 피해서야 하는 일이지만, 한국이 가진 백색 문화가 왜곡되고, 그 진리가 쇠퇴되어 버리는 것마저도 피해야 한다.

참고자료: 국회도서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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