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개인이 지닌 문체가 모여 짜임새 있게 표현된 예술이다. 그렇기에 문학은 항상 고독하고 굶주린다. 예술가는 배고픈 법이니, 이는 당연하다. 그런데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수요에 의해 빈곤의 차이가 생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결과물이 빛을 바란다면 자신도 덩달아빛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홀로 외로이 골방으로 들어가 끝없는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상 에 의해 빛을 내보일 기회가 존재한다. 한국에선 나름의 상금도 받고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오직 상금만이 물질적 궁핍에 괴로워하는 문학가들의 동아줄이 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번 프랑스의 문학상과 비교하며 오직 상금만이 이에 대한 해결책이 아님을 알았다.
프랑스는 최대 5000프랑의 상금과 10유로 안팎의 상금을 수여한다. 돈으로 상의 권위를 사지 않고 액수로 상의 명예를 꾸미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을 맛볼 수 있었지만,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상 수여 이후 작가의 생계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내 오산이었다.
역대 콩쿠르 수상자들은 평균 60만 부 이상 팔리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된다. 또한, 수상 이후의 작품에도 수많은 조명과 기대,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한국문학상을 조사해보며 약간 다른 점을 발견해냈다. 최대 5000만 원의 상금과 “~문학상” 이라는 책을 발간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한국인들과 프랑스인의 문학 관심에서 발생하는 차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누군가 한국 문학상을 받더라도 한국인들은 국내의 문학에 관심이 없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문학의 관심은 오직 노벨상 문학상 뿐이다. 문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직 권위 있는 상을 원한다.
한 작가가 문학상을 탄다 하여도 우린 그 책을 사려고 하지 않고, 문학상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따로 단행본을 내는 이유가 이 작가가 상을 받았으니 제발 한 번이라도, 읽어 달라는 문학계의 간절한 소리침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상금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독서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2013년 OECD 해외 주요국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독서량은 74.7%, 한국은 74.4%로 거의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우린 같아도 같은 것이 아니다. 매일 읽는 독자와 일주일에 몇 번 읽는 독자를 합산한 습관적 독자의 비율은 한국은 25.1%, 프랑스는 39.9%였다.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독서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조정되고 달라지지만, 문학은 그렇지 않다. 문학은 곱씹어 보아야 하며 작품의 배경과 작자까지 모두 알고 정말 읽고, 또 읽어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이제 작품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문학을 무시하는 게 아닌 문학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문학은 작품이 좋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문학은 문학이기에 아름답고, 문학만의 고유의 멋을 가지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어떤 이가 문학에 평생을 다 바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느끼지 못한 문학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문학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학이 없는 삶은 아마, 뚜렷한 목적이 없는 삶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을 통해 목적을 찾고, 각자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는 누군가 해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해야할 뿐이다.
참고자료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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