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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사회문화 자료실)

한복과 이영희의 삶

by kjk쌤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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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이영희의 삶

 

일반적으로 복식은 그 사회의 정신적 미의식과 시대상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매체로서 한 문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칭해진다. 또한 이는 그 시대와 사회적 문화 현상과 관련이 많으며 그 사회의 문화가 복식에 반영되어 보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복식문화는 변화 및 형성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동양적 문화정신을 바탕으로 한 우리만의 독특한 미의식으로 주변 나라와는 다른 문화를 계승하였고 복식문화 역시 동양의 다른 나라와도 차별되는 양식을 보인다. 하지만 현재 한복은 일상에 입는 옷이 아니라 결혼식이나 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예복화 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1920년대 이후 개화기를 거치며 한국에서의 서양복식의 보급은 점차 일반화되기 시작하고, 1950년대 및 60년대에 들어 5·16 혁명의 주체 세력들에 의한 신생활 재건 운동에 따라 생활하기에 편리하고 합리적인 복식이 권장됨으로부터 우리의 민속 복식인 한복은 양장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그러한 흐름으로 인하여 서양의 패션 유행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시되었고, 우리나라의 많은 디자이너들은 한사코 외국 것만을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우리나라 한복은 현대화 및 세계화 될 수 있었기에 본고는 한복만의 한국적 미를 전 세계로 표출할 수 있었던 계기와 이를 이끈 인물 이영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936.02.24 대구에서 출생
1977 이영희 한국의상 창립
1981 신라호텔 첫 개인 한복 패션쇼 개최
1983 백악관 초청 미국독립기념 축하 패션쇼
1994 한국 최초 파리 프레타 포르테 쇼 개최
2004.09 뉴욕 워싱턴 이영희 한복 박물관 설립
2009 북한 평양 남북 합작 패션쇼
2010.10 10회 서울패션위크 헌정디자이너 10인 선정
2018.05.17 사망

 

1) 한국적 복식디자인의 어머니

한국 사람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표출하며 역사 속에 형성되어 온, 전통성을 느낄 수 있는 한국적 디자인 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요소가 디자인에 반영되어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이에 한국적 이미지를 반영한 작품을 국외에 발표한 1세대 디자이너로서, 한복 이라는 이름을 세계무대에 알리고 현대 패션에 이를 나타낸 이영희를 통해 우리는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환기할 수 있다.

 

또한 한국적 패션디자인에 나타난 조형적 특성은 형태, 색채, 소재, 문양으로, 미적 특성은 자연미, 전통미, 순수미, 소박미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는 이영희의 작품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어 이러한 특징을 내세운 것이 한국적 미가 전 세계로 표출될 수 있던 계기라 할 수 있다.

 

 

이영희의 작품에서 주로 표현되는 한복의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순수미, 소박미를 작품의 미로 선정하여 주로 한복의 형태를 전체적으로 응용하기 보단 한복의 독특한 분위기와 실루엣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응용하였다. 치마 형태의 드레스와 치마의 형태를 상의로 응용하는 등, 허리선의 강조 없이 단순한 형태를 보이는 등 한국적인 형태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디자인을 선보였다.

 

또한 한국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색을 활용하고자 노력하였는데 천연 염색을 이용한 전통적 색채의 활용으로 한국적 분위기를 이끈다. 오방색을 사용하거나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의 소색, 또한 이를 함께 배색하여 정갈하고 단아한 느낌을 보인다. 특히, 천연 소재의 사용이나 천연 염색 기법을 사용한 자연스러운 색채, 비대칭적 구조, 자연 문양의 사용, 장식이 없는 소박함 등으로 자연과 순수성을 표현한 이영희는 한국 복식의 상징성을 잘 띄고 있는 것이다.

 

2) 한복 입기 운동을 이끈 한복의 현대화

그렇다면 이러한 한복이 현대화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상 한복이 개화기 이후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그 실용성의 이유도 컸다. 생활하기에 편리한 복식의 다양화로 인해서였는데, 이영희는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한복을 퓨전 한복 으로 개조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가 개량 한복 이라고도 불리는 생활 한복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개량 한복의 시초는 개화기 초기, 서양 선교사가 한복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게 그 위에 어깨허리를 단 것과 기독교 전도 부인들이 한복 저고리 교복을 신식으로 개량한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1980년대 한복 입기 운동 의 발생으로 인하여 생활 한복이 고안되기 시작하는데, 활동적인 우리 옷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지만 점차 쇠퇴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상의가 길고 하의가 짧다는 탓에 한복 고유의 비율을 가진 아름다움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천연 염색으로 인하여 색이 다소 바랜 형태를 띠었으며 당시 운동권 사람들의 유니폼 정도로 인식되어 일반인들의 거부감을 사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 이영희의 퓨전 한복이다.

 

전통 한복을 현대적 감성과 생활에 맞고 개발하고 변형시킨 이영희의 퓨전 한복은 한국적 느낌을 살린 현대 복식이라고 설명됨과 동시에 민속 의상으로서의 한복을 소개하는 것은 진부하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이어 정신을 배운다는 것이지 꼭 옛 모습을 똑같이 따라하는 게 아니다. 며 언급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퓨전 한복 중 가장 그 빛을 발하는 한복 드레스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의복이 지닌 의의로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점차 서양식 드레스에서 한국식 드레스로 그 형태가 변해가는 모습은, 드레스뿐만 아니라 일반 의복에서도 적용될 조짐이 보인다. 이렇게 이영희로 인한 한복의 현대화는 진짜 한복 입기 운동 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3) 세계화를 통해 제 이름을 찾은 바람의 옷, 한복

한복이 우리 생활 속에 베어 들게 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장식부터 과감히 없애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다.며 이영희는 자신만의 색을 감이한 한복이 탄생하게 된 그 첫 설화를 언급한다. 그녀는 한복의 실용화를 위해 과감히 저고리의 고름을 떼고, 이에 더 나아가 디자이너로서 그녀는 아예 저고리를 생략한 파격적인 한복을 한국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 쇼에서 선보인다.

 

이는 가장 모던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옷이며,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 이라는 호평과 함께 당시 수석 기자 로랑스 베나임에 의해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 이라는 뜻의 바람의 옷 으로서 명명된다. 이는 세계적 패션으로 거듭나는 한복의 진화 과정을 눈에 띄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상 국내에서는 저고리 없는 드레스형의 치마 한복을 놓고 국적 없는 옷으로 전통 한복이 아니며 격조 없이 맨발로 한복을 입은 모델을 무대에 서게 했다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이 한복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아연하게 한 그녀의 시도는, 바람의 옷 으로 불리는 이영희의 대표 작품이 되었으며, 이에 이영희와 오래 친분을 나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나는 이영희 옷에서 예스러운 얼굴과 전위적인 얼굴을 함께 본다. 며 강조하였다. 이렇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이영희는 이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파리에 의상실을 열고 미국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개관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녀는 나 자신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의 원칙을 가지고 일에 임했다. 하지만 파리 프레타 포르테 쇼에서 처음 한복을 소개했을 때 외국 기자들은 우리 한복을 키모노 코레라고 소개하고, 이에 분개한 이영희는 반드시 한복 이라는 제 이름을 찾아주기로 자기 자신과 약속을 한다.

 

그리하여 결국 해당 잡지의 편집장으로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아낸다. 또한 1년 후 파리 오랑주리에서 한복 전시회를 열게 되고 결국 프랑스 복식 사전에 한복이라는 고유명사를 등록하게 된다. 이처럼 그녀는 우리 옷을 알리겠다는 열망에 가득 찬 한복 디자이너였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길 원한다. 이는 이영희가 항상 자신의 목표로 삼아 오던 것이다. 실제로 그녀로 인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친 서구화로 인하여 우리 전통 의상이 예복으로만 멈추게 되고, 그 미가 사라지는 모습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업적은 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또한 그녀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동안 한 점 두 점 사서 모은 옷과 노리개 등을 모아 뉴욕에 설립한 박물관은 한복의 세계화의 버팀목으로서 자리매김하였고, 이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볼 수 있다.

 

이영희의 한복 인생은 혁신의 연속이었다. 한복에 처음 수 를 놓은 것도, 한복은 원색의 옷이란 고정관념을 깬 것도 바로 그녀이다. 이영희의 꿈은 동양의 샤넬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두루 마기형 재킷, 한복 치마에서 변형된 원피스, 자연스러운 멋을 살린 바지 등 한복의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 개발에 공을 들인다.

 

어렵더라도 이런 일을 시작하고 개척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억지로 벌여놓은 일이 앞으로 세계에 나아가 활동하려는 후배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숨 고르며 편히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이영희 디자이너는 열정과 시간, 전 재산을 쏟아 부을 만큼 한복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하면서 시대에 따라 변하는 한복의 아름다움에 도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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