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시(국어 세특)

시인 김소월의 삶

kjk쌤 2024. 9. 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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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1. 동기

우리나라 문학은 역사적 사건에서 어떠한 양상을 띄었으며, 일제 강점기 시기 등에서는 어떻게 저항하였는지 알아보고자 시인을 통해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이러한 주제를 설정하였다. 특히, 김소월이라는 인물을 선정한 이유는 김소월의 시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김소월 하면 다들 저항 시인이라고 떠올리지 않고 여성적 목소리의 시를 작성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도, 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까지 김소월을 떠올리면 여성적 어조를 많이 사용한 시인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이러한 보고서를 통해 김소월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며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김소월(1902.8.6 ~ 1934.12.24)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공주로 본명은 김정식이지만 본명보다 소월이라는 아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양적인 시가 아닌 민족의 토속적인 한과 정서, 이별, 그리움을 그대로 담아낸 시를 써서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불린다. 주요 작품으로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접동새>, <산유화> 등이 있다.

 

2. (1) 출생과 학업, 그의 유년시절

김소월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아버지는 김성도, 어머니는 장경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란 곳은 아버지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현 평안북도 곽산군 남단리)이다. 하지만 아버지 김성도는 김소월이 2살 때,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친척 집에 음식을 싸 들고 말을 타고 가던 길에, 철도 일을 하던 일본인들이 이 음식을 뺏으려고 김성도에게 달려들어서 마구 구타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으나, 심한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PTSD에 시달리며 음식을 거부하며 집안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굶어 죽게 되었다. 그래서 김소월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자랐으며 한편으로 이런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경멸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 후, 김소월의 가족은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던 김소월의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한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직후인 1905년 김소월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숙모 계희영이 김소월의 집안에 들어오고. 계희영은 어린 김소월을 앉혀놓고 자신이 알던 전래동화나 민요들을 들려주었으며 후에 이는 김소월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2. (2)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경험하다.

이러한 유년시절 이후 김소월은 남산 보통학교를 입학, 졸업하고 1915년 평안북도 정주군에 있는 오산학교로 진학한다. 오산학교 재학 도중인 1916년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의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오산학교에서 김소월은 오산학교에서 시인으로서 스승인 김억과 사상적 스승인 조만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한편 같은 시기, 김소월은 오산학교에서 만난 오순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교제를 하게 되지만 김소월은 14살에 홍단실과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기에 두 사람의 연은 오순이 시집을 가게 되면서 끊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소월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하며 김억에게 배운 시 작법으로 많은 양의 시를 쓰게 된다. 이 시들은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에 실려 김소월의 대표적인 시가 된다.

 

1919, 3.1 운동의 여파로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김소월은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하여 졸업하고 1923, 일본의 도쿄 상과 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그해 일본 관동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죽고, 많은 재산 피해가 일어났다. 사회가 불안해지자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등의 거짓 소문을 퍼트려 많은 조선인을 죽이게 되며 김소월은 이 일로 인해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뼈져리게 느끼며 귀국한다.

 

2. (3)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다.

일본에서 귀국 후, 김소월은 스승 김억과 경성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1925년 김소월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김억의 사비로 출간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소월은 할아버지의 광산 경영을 도왔으나 망하고 그 후, 할아버지 집에서 독립하여 동아일보 지국을 열고 신문 배포, 수금, 경영을 모두 도맡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신문사는 얼마 못 가서 당시 대중들의 신문에 대한 무관심, 일제의 방해 등이 겹쳐 문을 닫고 말았다.

 

신문사가 문을 닫은 이후, 김소월은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했고, 결국 193412 24일 뇌일혈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유서나 유언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아내에게 죽기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고 말하며 우울해했다는 것을 보아 자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현재 존재한다.

 

2. (4) 김소월의 시로 알아보는 저항의식

김소월은 당시 저항의식을 표현하는 시를 직접적으로 발표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일제강점기 당시 서양적인 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토속적인 시를 발표했다는 점에서 일제에 대해서 저항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제에 저항하는 듯한 시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항 시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라는 시를 보면 '강변'으로 대유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엄마야 누나야'라는 어린아이의 호칭을 사용할 정도로 순수하다. 그가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강변'은 그에게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안식처로서, 당시 현실 상황에서 견주어 볼 때는 일제의 모진 압력에 벗어난 어떤 이상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떤 책에서는 항일 의병활동 중에 아버지와 형을 잃은 어느 소년이 만주로 이사 가려는 엄마와 누나에게 정든 친구가 있는 곳을 떠나기 싫어서 강가 하천부지에서라도 살자고 떼를 쓰는 내용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西道餘韻

 - 옷과밥과自由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저새요

 네몸에는 털이고 것치잇지

 

 밧테는 밧곡석

 논에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숙으러젓네!

 

 楚山지나 狄踰嶺

 넘어선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

 

이 시에서도 역시,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 잘 표현되어있다. 김소월은 이 시에서 본문에 옷과 밥과 자유라는 단어를 일체 얘기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화자는 우선 공중에 떠다니는 새의 털과 깃을 가리키면서 사람들이 헐벗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서 잘 익은 곡식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화자나 그의 이웃들에게 사실상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나그네임이 분명한 화자는 짐 싣고 재를 넘는 나귀에게서 바로 자신의 고단한 모습을 발견한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란 마지막 구절은 화자의 고단함과 굴레와 자유 없음의 긴 사연을 간결하게 암시한다. 김소월에게 옷과 밥과 자유를 모두 빼앗긴 상황이란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 없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1924~25년에 김소월의 시는, 식민지 농촌의 절박한 현실인 이향과 유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나무리벌 노래 옷과 밥과 자유 남의 나라 땅 등이 대표적이다.

 

3. 결론

이 탐구 활동을 통해 1920 ~ 30년대 한국 시를 알아보며 한국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기회를 기르게 되었으며 김소월의 일생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강압적인 통치로 인해 피해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작정 외우면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를 이렇게 한 시인의 삶을 통해서 이해하며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활동을 진행하면서 김소월을 저항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어 과연 김소월이 저항 시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쓰면서 김소월은 저항 시인이 맞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저항 시인의 정의는 사회의 주요 권력을 취하고 있는 기득권에 반대의 뜻을 나타내거나 그런 시를 짓는 시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 김우창 등은 김소월은 생에 대한 깊은 허무주의에 빠졌으며, 그것은 큰 시적 발전을 이루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깊은 허무주의와 상실감을 겪기도 하고 적극적인 항일활동으로 인해 투옥되는 등의 일을 겪은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항일의식을 드러내며 슬픔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에서 항일시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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