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복덕방 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1930년대 서울의 한 복덕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땅 투기에 실패하여 파멸하는 한 노인의 삶에 대해 다룬다. 위 이야기에는 안 초시, 서 참의, 박 영감이라는 세 노인이 주로 등장한다. 안 초시는 수차례 사업이 실패하여 복덕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박 영감은 안 초시에게 부동산을 소개해주었고 안 초시는 이를 그를 홀대하던 딸에게 권유한다.
딸 경희는 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 부동산에 투자하게 되는데 이것이 사기극이었음이 밝혀진다. 안 초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독약을 먹고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의 자살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던 경희는 참의의 권율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참의와 박 영감은 장례식에 방문하나 경희와 조문객들의 위선에 실망하게 된다.
1930년대는 그저 식민지 약탈의 시대이자 모든 국민이 일본에게 정치권과 군사권을 빼앗겨 부동산 사업에는 관심이 없는 그런 시대라고 속단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에 문제를 거시적으로 접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조선에게 부동산과 같은 문제를 예로 경제적 문제에 영향을 주었듯이 그들은 조선인의 생활 양상을 전반적으로 변화시켰다. .
본론
부동산의 변화
소설에서 안 초시 는 부동산을 투기하는 데에 실패하여 복덕방에 신세를 지는 도시 빈민의 처지로 몰락한다. 위 소주제에서는 크게 두 개로 1930년대의 부동산 투기와 도시빈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 부동산 투기이다. 1930년대에는 주식, 부동산, 황금의 투기가 열풍이었다.경성의 재발견 으로 알려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전봉관은 이 사태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땅값이 넉 달 만에 1000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토지 450만평을 미리 사들여 1200만원을 번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평범한 월급쟁이 한 달치 봉급이 50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토지를 발표 이전 가격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이 세워지고 중일전쟁 이후엔 축항 공사마저 흐지부지돼 버려요. 허무한 결말이었죠.
미두나 주식도 대단히 투기성이 강했으리라 보입니다.
미두시장은 1인당 하루에 현재가치 1~2억원을 따거나 잃는 일이 흔했어요. 20대 남자 하인이 1년 만에 백만장자가 돼 현재가치 30억원을 들여 호텔에서 초호화 결혼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도 2년 만에 파산하고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명동 길거리에선 주식 장세를 놓고 도박을 하는 합백이란 것도 성행했습니다. 당시 조선인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돈맛을 본 첫 세대였어요.
또한 기부금의 부담이 농촌지주를 지방에서 경성으로 이동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둘째는 물자통제의 강화로 인한 건축난이 그 이유다. 1930년대에 물자와 자금의 통제로 인해 건축재의 구입이 어려워 건축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주택공급은 감소되었다. 또한 이 당시 경기도 산업과의 물자통제가 지나치다는 것과 경찰의 신축 허가가 어려웠다. 셋째는 시가지계획이나 토지구획의 정리로 인해 생겨난 멸실 주택의 증가이다.
도시 빈민
이런 부동산 투기 문제와 더불어 동시에 경성이라는 도시에서는 많은 빈민들이 발생했다. 이런 도시의 빈민은 어디서 도래한 것일까? 1910년 일본 제국은 조선을 식민지로 편입한 후,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노동 분업을 시행해왔다. 식민지였던 조선은 주로 쌀로 분류되는 원료의 공급과 낮은 수준의 경공업 생산하였고 일본의 상품을 주로 소비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조선 정책은 지주 계층과 농민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 총독부의 토지 조사의 결과와 시장 관계의 발전으로 인해 토지조사의 결과와 시장 관계의 발전으로 토지가 대지주에게 집중화되어 많은 농민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소작농 일을 해 겨우 돈을 버는 사람도 많았으나 경성으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경성에 올라와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과 관련된 내용은 이태준의 다른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봄 은 시골의 자작농 가정이 도시로 이주하였다가 파산하여 도 의 최하 계층이 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박은 시골에서 꽤 여유 있는 생활을 했지만, 빚 때문에 땅이 경매에 넘어갔고, 경매 후 남은 돈 천 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천 원은 서울에서 취직 운동을 하는 3년 동안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고 박은 완전히 파산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빈민촌 으로 이주하였고, 빈민촌에 사는 탓으로 그의 아내는 장질부사로 죽고 말았다. 이후, 열 살이 된 딸은 학교를 그만두고 담배공장에 다녔고 박 자신도 인쇄소에 취직하여 둘 다 노동자가 되었다. 그의 삶은 그의 환경만큼이나 빛이 없는 것이 되었다: 바깥날이 어찌 밝고 따뜻한지, 그리고 행길에서 사람 소리들이 어찌 번화스러운지 방안은 해가 높아갈수록 굴속처럼 음산해지고 가깝하였다. 여간 몸살쯤으로는 누워 배길 수가 없었다. 박은 그만 어뜩어뜩 현기증이 나는 머리를 반동적으로 흔들며 일어나고 말았다.
식민지 모더니즘
사람들은 식민지의 근대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과 그 배경이 경성이라는 점에서 경성을 따와 이러한 작품들을 경성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이태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식민지 통치로부터 피해를 본 인물들이다. 이태준이 묘사했던 조선인은 식민통치자들로부터 조선의 식민 통치자는 식민지의 잉여적 존재로 간주되고 무시되었다. 하지만 이태준은 식민 통치자들이 무시했던 조선인들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고 그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부여했다.
이로 인해 이태준의 작품은 현실 문제를 내용으로 하지만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특징을 갖기도 한다. 또한 식민지 통치로 인한 불균등 발전의 단점을 아름답게 표현하며 예술성을 강조함으로서 식민지 모더니즘’의 한 유형을 창조시켰다. 또한 이런 식민지 모더니즘은 우리에게 생소한 아프리카 문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알려진 작가로는 응구기 와 시옹오가 있다. 그는 식민 통치로 인한 케냐 사회의 아픔과 문제점들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피의 꽃잎들 은 1977년에 그가 정치적 이유로 투옥될 당시에 집필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한 케냐 전통 사회의 붕괴와 독립 이후에 세워진 국가의 부정부패를 보여준다.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나를 놓아주시오. 나를 놓아주시오. 왜 과거의 목소리들을 깨우는 건가요. 이것은 케냐가 과거에 받았던 식민통치의 아픔을 대변한다.
결론
식민지에 기본적인 생활습관부터 문화, 경제적인 부분까지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무단통치를 자행하는데, 이는 그 국가의 군인과 경찰로 하여금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하도록 지시한다. 최근에는 이런 자신들의 행위에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영국정부가 과거 식민통치 시절 케냐에서 저지른 잘못을 60여년 만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배상금을 지급했다.
복덕방에서도 볼 수 있었듯, 일제의 타율적인 근대화에 의해 조선의 급진적인 발전과 도시화가 진행되도록 이끌었다. 이는 곧 조선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고 도시빈민을 발생시킨다. 그의 소설에는 도시와 농촌의 불균등 발전, 경성 내부의 민족적인 공간 구분, 도심과 변두리 개념의 탄생으로 생겨난 새로운 유형의 조선인과 그의 삶에 대한 반응이었다.
참고자료
1930년대 주식,부동산,황금 투기광풍, 뉴스 데일리
1920~1930년대 경성부 주택문제의 전개와 대책
국회도서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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