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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여성 CEO 김만덕

kjk쌤 2024. 9. 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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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최초 CEO 김만덕

 

1.서론

 

전부터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만을 챙기려 하고,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비자를 속이는 부패와 비리 사건이 해마다 보고되고 있다. 이를 지금껏 지켜보면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궁극적인 기업의 목적이기에 기업이 이윤을 위해 하는 활동들을 모두 비난할 순 없지만,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높은 도덕성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역할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와 대조되는 모습으로 정조 시절, 심각한 흉년으로 쌀이 부족하던 제주 사람들에게 육지에서 사들인 쌀 300석을 모두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조선의 여성 최초 CEO 김만덕 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조선 사회이고, 심지어 사회적 신분도 낮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확고하고 정직한 신념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해 크게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는 윤리적인 개념을 먼저 깨우치고 실천한 모습이 놀라웠다.

 

녀가 실천한 행동들이 또한 현재 배우고 있는 과목인 생활과 윤리에서 나오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전문직 윤리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어떤 전문직 윤리를 김만덕이 어떻게 실천했는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2. 본론

 

1) 김만덕의 생애

1939년 영조 15년에 출생한 김만덕은 11세 되던 해에 아버지 김응렬이 나주에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사망하였고, 이듬해에 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외삼촌 집에서 살았던 김만덕은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기생일을 하다 그녀가 20살 되었을 때 관아에 가서 양인의 신분을 다시 되찾기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주 목사와 판관을 찾아가 부모를 잃고 부득이하게 기녀가 된 사정과 양인으로 환속시켜줄 것을 요청하였다.

 

24세에 다시 양인 신분으로 돌아오게 된 후, 재물을 모으는데 능하였던 김만덕은 상인으로 활동하며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녀는 배를 만들어 육지와 쌀을 비롯한 여러 곡식을 무역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하였다. 이는 급격하게 발전하던 조선 상업의 경향을 잘 분석하여 적절한 시기에 물건을 사고팔았던 상인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만덕은 1790년부터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제주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배를 마련하고 육지에서 곡물을 사들여 구호곡으로 쓰게 하였다.

 

이러한 선행은 1796년 정조에게 보고되었고, 정조는 그녀에게 면천시키는 것으로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김만덕은 이를 정중히 거절한 후, 바다를 건너 금강산을 유람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구휼에 대한 상으로 정조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당시 여자들은 바다를 건널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 여인으로는 예외적으로 육지로 나와 한양에 머무르고, 금강산을 유람한 후 제주도로 돌아갔다. 이후 1812(순조12)에 사망하였다.

 

2) 김만덕의 업적

김만덕은 정조 206, 제주도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제주도는 벼농사를 하기에 유리하지 못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흉년에 취약한 지역으로 1790년 이래 흉년과 태풍의 피해가 컸고,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

 

1795(정조 19) 2월 조정에서는 5천 섬의 구휼미를 제주도로 내려보냈으나, 쌀을 실은 배 12척 가운데 5척이 난파당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때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사서 제주도 백성들을 구호하는 자선을 베풀었다. 또한, 김만덕은 1천금을 내놓아 배를 마련하고 육지로 건너가 바다 근처 지역의 곡식을 사들여 친척들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준 후, 나머지를 모두 관아로 보내어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도와주도록 하였다.

 

3) 김만덕이 가졌던 직업 정신

김만덕이 상업에 성공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지 않고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한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올곧은 직업 정신 때문이었다. 김만덕은 박리다매, 정가매매, 신용본위를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각각 싸게 많이 팔아 큰 이익을 얻는 것, 정직하고 과장 없는 알맞은 가격으로 사고 파는 것,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거래를 하는 것이다.

 

김만덕은 자신이 했던 기녀 생활을 바탕으로 제주에 있는 여성들에게 싼 값에 많은 장신구, 옷감 등을 팔았고 점차 판매량을 늘려가면서 큰 이득을 취하게 되었다. 또한 김만덕은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았던 거상으로, 눈 앞에 있는 큰 이익에 빠지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만족할만한 거래를 진행하였다. 김만덕이 생각했던 신뢰, 믿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 성실성과 정직으로 판단하였다.

 

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 김만덕은 이와 같은 말을 남기며 많이 가진 자들의 도덕성 실현을 강조하였다. 풍년임에도 흉년에 대비하여 절약하는 등 자신이 주장했던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면서 힘든 상황의 이웃에겐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김만덕은 직업적인 정신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서도 남들과 다른 시각을 보였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였고, ‘여성이라는 사회적인 굴레와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은 당시 조선에 적용된유교적 사회상을 고려해보았을 때, 진보적이고 도전적인 김만덕의 삶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4) 김만덕의 행동과 전문직 윤리

조선시대 김만덕이 했던 모든 활동은 지금 현대에 배우고 있는 직업윤리 이론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직업윤리에서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업적 전문성이 사회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김만덕은 상업에 종사했던 당시 매우 성공한 인물로서, 그녀가 하는 행동은 상당히 큰 영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위치에서, 자만하거나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남을 베푸는 데 사용했다는 점은 현대에도 요구되는 직업윤리와 매우 닮아있다.

 

자신의 직업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개인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것 또한 윤리학이 요구하는 전문직의 덕목이다. 정조 20, 매우 심각했던 제주 흉년 당시, 거리낌 없이 자신의 재산을 투자하여 제주 백성들을 살렸던 것, 이 업적은 김만덕 자신이 그저 많은 돈을 얻길 바랬다면 많은 제주의 백성은 굶어 죽어 나갔을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재능으로 얻은 이익을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책임, 자신의 성공만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만덕의 행동은 윤리적이라고 보여진다.

 

김만덕의 행동은 전문직 윤리 뿐만 아니라 기업가 윤리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바로 이윤을 창출하는 소극적 책임과 동시에 사회적 지원과 인류애를 구현하는 적극적 책임으로서의 윤리적이고 자선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리학에 근거하여 보았을 때, 김만덕은 윤리적인 직업 생활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3. 결론

 

김만덕은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CEO로서, 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았던 윤리적인 한 명의 영향력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김만덕의 이러한 업보는 여러 직업마다 적용되는 윤리적인 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고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 특징과 극단적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지는 상황에서 이윤만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김만덕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에도,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윤리 의식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 김만덕 기념관

신문 기사 - [제주] 거상 혹은 의인이라 불린 여인,

김만덕의 자취를 따라 걷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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