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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들의 도시에 남아
나는 지금 텅 비어있습니다
어느 때인가, 나 역시 비어있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요
나는 나로 가득 차 부족함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기쁨이었다는 사실도 말이죠
언제부터일까요,
문득 바라본 나의 모습에서
내가 나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어쩌다 마주친 흙탕물 속 나의 눈동자에서
내가 나 없이 비어버린 모습을, 보게 되어버린 것은
어디에서, 언제 떨구어 버린 것인지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내가 나를 떠나가 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내가 배우는 수많은 책들의 갈피에서도
삼켜질 듯한 무게로 입 벌리고 선 큰 가방의 안에서도
나와 같은 옷 입는 붉은 벽돌 건물의 동지들 가운데서도
나는 나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알 것도 같습니다
아직 덜 맺힌 수줍은 꽃봉오리와,
바람이 연주하는 나뭇잎 피리소리를 사랑하고
나무가 곱게 물들여 놓은 그 추억의 파편에,
잿빛 하늘이 감추어 둔 그 백색의 순수에 닿고 싶었던
잃어버린 내가 떠나간 곳은
아마도 하늘과 땅과 바다가 시작되는 오색 무지개의 고향
노잣돈 한 푼 남아 있지 않은 빈 몸뚱이로는
도저히 찾아갈 엄두도 낼 수 없는 곳
나는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잃어버린 자들의 도시에 남겨진, 비어버린 나는
떠나간 내가 두고 간 조그만 씨앗에
무지개 닮은 꿈을 담아 땅에 심고
이 씨앗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기를
가만히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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