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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위작 논란

kjk쌤 2024. 9. 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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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위작 논란

 

1. 서론

역사 학자가 꿈이기 때문에 어떤 한국사 사건을 주제로 선정해도 괜찮았지만, 역사 분야 중에서도 문화재 및 미술품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관련 주제를 생각해보던 도중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을 떠올리게 되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은 한국사에 더 없을 미술품 위작 논란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천경자 화백의 그림 전시회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서양화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의 그림과 뱀을 직접 관찰하면서 그렸다는 일화 등에 매력을 느껴 관련된 내용을 더 알아보기 위해서 검색하며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미인도라는 그림의 위작 논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작가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나 위작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작 논란이 불거진 이유와 천경자 화백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사건의 결론을 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는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술사에서는 국가를 막론하고 여성 화백들의 작품은 간단하게 페미니즘 미술로 묶어 두고, 그들 개인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한 편 읽은 후 내가 알고 있고, 평소 좋아하던 그림들의 작가들 또한 모두 남성 화백이라는 사실과 대부분 국내 작가가 아니라 국외 작가들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는데, 위와 같은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한국의 미술 역사 및 한국 여성 화백의 발자취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논란을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다.

 

2. 본론

천경자 화백에 대하여

천경자(1924.11.11 ~ 2015.08.06)는 한국 근 현대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이며 일본 도쿄 여자 미술 전문학교(현 도쿄여자미술대학)에서 유학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전통적인 동양화 교육을받았으며 평생 동안 동양화 색소를 계속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상과 강한 표현을, 가장 중요하게는 개별적인 주제를 통해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에서 벗어난 독특하고 혁신적인 그림 스타일을 개발했다. 그녀의 그림은 70년이라는 오랜 경력 동안, 심지어 그녀가 죽은 후에도 한국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국민 화가라고 불린다.

 

2. 경자 화백의 미술세계

천경자 화백은 초기에는 일본 채색인물화풍의 영향을 받은 인물화를 제작하였고 사생적인 화풍을 유지하였으나 해방 후 일본화풍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수묵화풍이 화단의 주도권을 잡게 되자 새로운 화풍을 모색하였다. 특히, 1957년 전통회화의 다양화를 모색하였던 백양회(白陽會)와 서양화가들의 단체인 모던아트협회 등에 가담하면서 소재, 주제, 기법 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설화와 상상의 세계를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안료를 두텁게 발라 거친 마티에르 효과(예술 작품의 물질적인 재료, 소재, 재질 혹은 재질감. 일반적으로 표현된 대상 고유의 재질감을 내는 효과)를 내는 등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또 해외여행을 통해 이국적인 풍취를 수용하고 과슈(수용성 아라비아고무를 매재로 안료와 혼합한 불투명 수채화구 또는 이것을 써서 그린 그림)와 같은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한국화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여성화가로서의 자의식이 표현된 단독 여인상들을 제작하면서 천경자 특유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여성인물화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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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뱀이 들어간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여성의 경우 자신의 모습을 그림 속에 투영해 거울 같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뱀을 유리병에 넣고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려 생생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다.

 

3) 미인도 위작에 대하여

1977년 작인 미인도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었으나 10.26 사건으로 김 전 부장의 재산이 압수되면서 이 미인도 또한 정부의 소유로 넘어갔고, 19805월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여년 정도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13'움직이는 미술관' 순회전의 전시작으로 포함시키며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이 작품을 확인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위작 논쟁이 시작되었다.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하며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님을 주장했다. 천경자의 위작 주장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위를 가리기 위해 X-ray, 적외선, 자외선 촬영 등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였고, 한국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1차 감정 실시 후 적어도 가짜는 아니라는 결론을 냈고, 2차 감정에서는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 의견에 감정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화랑협의회 내부의 규정에도 어긋난 결론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앞으로 위작임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밝혀지면 받아들이겠다.는 단서를 붙인 끝에 진품임을 주장하였다. 작가는 이에 항변하였지만 당시 언론에 보도된 '과학적' 감정과 논란과 당시 68세였던 나이로 인해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결국 천경자 화백은 큰 충격을 받아 예술원 회원직을 사퇴하고 전시회 출품 등 작품공개 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끝에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는 소장 경위가 확실하며 전문위원이었던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이미 진품으로 감정했다는 이유를 들어 진품으로 주장했다.이사건은 천경자 화백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으며, 결국 천 화백은 일시적이지만 절필까지 선언하게 된다.

 

3. 결론

무엇보다도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가장 의문스러웠는데,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가장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작가의 증언을 뒤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아쉬웠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며 다양한 경로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 사건의 가장 처음이라고 볼 수 있는 사실이 논란 해결의 핵심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서울 중앙지방 검찰청은 프랑스 뤼미에르 팀의 위작이라는 감정 결과를 여러 근거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미인도는 진품으로 남아 있다. 뤼미에르 팀은 다중스펙트럼, 초고해상도 촬영, 1650층의 층간분리 기술과 광학, 물리학, 수학을 동원해 미인도를 분석했으며,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것들은 모두 차단했다고 밝혔다.

 

뤼미에르 팀은 그 결과를 63쪽 분량의 분석 보고서에 담아 제출했는데 검찰이 이를 무시한 것은 "논리적 근거도 없이 과학적 분석 결과를 전적으로 무시한 것"이며, "검찰이 보고서를 묵살하고 왜곡했다"며 반발했다. 이렇듯 천경자 화백 사후에도 미인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천경자 화백이 생전에 주장한 바를 따르는 것, 즉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주장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김정희, 2017, 천경자 코드, 맥스미디

천경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회도서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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