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기후 최적기
영거 드라이아스기 이후 해수면은 빠르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아직 현재에 비해 30m 정도 낮았다. B.C 5800년경에는 대서양 해수 순환이 재개되면서 온난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B.C 3200년경에는 2세기 간 다시 대서양 순환이 약해지면서 건조화와 한랭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영거 드라이아스기만큼 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아메리카 서부에는 가뭄이. 유럽은 온난다습화가, 사하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는 사막화 현상이 일어났다.
B.C 4000년~B.C 3000년에는 지구의 자전축이 약간 더 기울어져 있었고, 이로 인해 북반구는 태양 복사를 5% 더 받았다. 그리고 B.C 3000년~B.C 1000년 시기에는 조몬 중기 한랭기라는 춥고 건조한 시기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자 인류는 관개 농업을 도입하는 등 기후 변화에 적응해나갔다.
그러나 고대 기후 최적기가 끝나갈 무렵 기후는 다시 요동쳤다. B.C 1000년 경 강한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여 지중해 동부와 같은 문명 중심지에는 큰 가뭄이 들었다. 이에 따라 히타이트 문명이 붕괴하고 미케네 문명이 탄생하기도 하였고, B.C 8세기 경에는 몽골 초원이 한랭 건조화되면서 유목민들이 중국에 유입하여 은 왕조를 세우기도 하였다.
B.C 400년에도 강한 엘니뇨가 나타났고, 유럽에 한랭다습한 기후가 도래하고 초원지대에는 가뭄이 심해져 켈트족의 대이동이 나타났다. 기원 이후 유럽의 대륙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대의 경계가 북아프리카로 하강하면서 기원후 400년까지 로마 지역은 매우 온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536년 대규모 화산폭발로 한랭화가 세계 곳곳에 나타나면서 문명 시대에 대혼란이 찾아왔다.
중세 온난기와 소빙하기
중세 온난기는 A.D 900년에 시작되어 500년간 지속되었다. 지중해 추이대가 북상하여 서유럽의 평균 기온은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던 20세기 평균보다도 0.7~1.0℃ 높았다. 이에 따라 농경 한계선이 북상하여 현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농사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온난한 기후를 누리던 지구는 A.D 1400년 시작된 소빙하기를 맞이하였다. 한랭한 기후가 찾아오면서 큰 가뭄이 들었고, 아시아의 몽골 민족은 기근에 있던 유럽을 침략하면서 페스트까지 전래되었다. 이로 인해 유럽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539년경의 엘니뇨는 1541년 중국 북부 지역에 기근을 초래하였고, 1587년에 발생한 엘니뇨는 북대서양 유럽 연안 곳곳에 폭풍우를 일으켰다.
소빙기는 1550년~1850년 극에 달하였고, 특히 1620~1720년 사이의 평균 기온은 소빙하기 전체보다도 1.3℃ 낮았다. 영국의 테임스 강은 얼어붙었고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사이의 덴마크 해협은 1580년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부빙 등이 연결되어 완전히 바닷길이 차단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도 소빙하기에 의해 경신 대기근이 발생하여 인구의 10%가 죽는 등 엄청난 가뭄과 피해를 입었다.
다른 견해도 있다. 대기 대순환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살펴보면 소빙기에는 겨울의 고기압이나 저기압의 중심위치가 현재보다 남하하고 있었고 고기압이 발달하고 있어 한파가 강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한대전선은 상당히 남쪽에 위치해있어 그 북쪽에서는 대륙에서의 차가운 대기권이 우월하였고, 이로 인해 여름에는 태평양고기압이 약했으며 우리나라 중앙과 일본 북부에 걸친 북태평양 한대전선대가 겹쳐 전선 활동이 왕성하여 비가 많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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