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동기
수업시간에 인쇄술을 주제로 한 본문이 있었다.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한국과 독일이 연관되어있던 부분은 금속활자에 대해서밖에 없을 것이다. 본문에 실제로 Gutenberg가 언급되어있고, 그의 기술 한 세기 전에 한국이 먼저 발명했다고 명시되어있다. 이 사실은 전에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건지, 관련성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탐구 내용
1230년경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이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으며, 1377년에는 ‘직지심체요절’이 제작되었다. 구텐베르크가 성서를 제작한 것은 1455년으로, 한국이 금속 활자 인쇄술의 시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독일이 시초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구텐베르크가 이를 발명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만약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이 아니라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느낀 바로, 나는 둘 사이의 교류의 증거가 ‘활자 로드’라고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더 조사를 해보니)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와 초원길(중국→사마르칸트→러시아(노브고로드)→유럽) 모두 열려있어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로 전파되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판단된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 드로뇽 교수는 구텐베르크 당시의 인쇄물에서 실수로 활자가 쓰러진 상태로 인쇄된 흔적을 발견했다. 또한 같은 장에서 같은 글자의 활자가 서로 다르게 찍힌 것을 확인하였으며,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인쇄 면을 확대하여 활자가 찍힌 면이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요철이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구텐베르크 활자가 어미자(거푸집)로 아비자(활자원형)를 만들어 주조기로 주조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한 성현의 『용재총화』에 수록된 주물사주조법과 같은 방법으로 주조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즉, 구텐베르크의 활자 주조법이 한국의 전통활자 주조법과 같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문명은 자생적으로 여러 가지 실패를 거치고 시간이 경과해서 성공하는 자생성과 남의 우수한 것을 배워 따라하는 모방성을 지닌다. 한국에서, 금속 활자 인쇄술은 1200년대 초에 발명되어 약 200년에 걸쳐 자생적으로 연구되었다. 그 결과, 1434년 조선 세종때 ‘갑인자’에 이르러 최고 상태의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가 들인 긴 시간에 반해, 구텐베르크는 10년이라는 시간 안에 최첨단의 인쇄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원래 우수하던 고려의 기술을 모방하였기 때문이 가능했던 일이라고 추측된다.
찬고자료: 국회도서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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