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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입시(인문계열 자료실)

김대락 독립운동가 생애와 활동

by kjk쌤 202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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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845년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천전리에서 김수일의 후손으로 의금부도사 를 지낸 김진린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우는 효락소락정락이고, 매부는 안동 법흥의 이상룡, 봉화 법전의 강면, 안동 하계의 이중업 이다.

본관은 의성이고, 자는 중언, 호는 비서이다. 서간도로 건너가 백두산 기슭인 류허현 삼원보에 정착하였다고 하여 백하라는 별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퇴계학맥을 계승한 정재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한 종조부 김헌수와 종숙부 김진기, 그리고 족형인 서산 김흥락 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대락 독립운동가 생가
김대락 독립운동가 생가

활동

1895년 안동의병부대가 결성될 때 부친 김진린이 작고하여 상중에 있었으므로 직접 참가하지 못하고 후원하였다. 1907년 류인김후병하중환 등이 안동에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를 설립하려 하자 문중의 원로들과 함께 신교육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908년 매부인 석주 이상룡이 신문화를 수용하여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하자 대한협회회보를 읽은 후, 독대한협회서유감 이라는 글을 짓는 등 생각이 크게 변화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김동삼, 이상룡 등과 함께 신민회의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 건설 계획에 호응하여 조국을 떠나기로 결단하였다.

1910122466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고향인 천전리를 떠나 1911115일 화이런현 항도촌, 에 도착하였으며, 심택진의 집에서 이상룡 등과 함께 약 2개월간 머무르면서 한만관계사를 연구집필한 뒤, 419일 삼원보 이도구 에 들어갔다.

1911년 류허현 삼원보 이도구에 정착한 뒤, 1911522일 설립된 추가가의 신흥학교 교장에 추대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신흥학교는 191267일 합니하로 이전하였고, 19135월 학교명을 신흥중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9년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였다.

1911622일 이상룡이동녕이시영이회영 등과 함께 경학사 설립에 참여하였다. 19122월 퉁화현 합니하로 이사하였다가, 19132월 삼원보 남산으로 돌아오니, 경학사가 해체된 뒤였다. 이리하여 한국 교민 사회에 새로운 자치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13년 경학사를 계승한 공리회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기록에는 19141210일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묘는 류허현 삼원보 남산 뒷산에 있었으나,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저술로는 백하일기 3책과 그 아들 월송 김형식이 엮은 선고유고 가 있는데, 선고유고 에는 권유문통분가공리회취지서독대한협회서유감대동역사서 등과 많은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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